헨리 모즐리 영국의 물리학자 1887년 출생 박물학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모즐리는 박물학보단 물리학에 흥미가 있었고 이튼 칼리지를 졸업해 옥스포드 대학교에 입학 옥스포드를 졸업한뒤엔 물리학자 러더퍼드의 연구팀에 들어가 연구 활동을 시작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원소 주기율표의 정립이다.
주기율표는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고안했지만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원자량으로 원소를 나열했다. 이에 따라
니켈의 원자량은 58.69, 코발트의 원자량은 58.93으로 니켈이 27번, 코발트가 28번으로 오게되는, 순서가 맞지않았다.
모즐리는 화학 원소에서 방출 되는 X선의 주파수가 원소의 원자 번호와 유사한 숫자의 제곱에 비례하는,
즉 원자번호가 원자핵의 양성자 개수와 동일하다는 모즐리의 법칙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4개의 원소를 제외한 주기율표상의
모든 원소를 채우고 순서를 정립하는 업적을 세웠다. 그가 연구를 시작한지 3년만의 성과였다.
이런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14년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육군 공병장교로 자원 입대하였고 전선으로 떠난다.
그리고 1915년 갈리폴리에 투입되고 전사하고만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모즐리의 죽음에 과학계는 충격에 빠졌고 적국 독일마저도 모즐리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
특히 모즐리의 유서에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과학의 발전에 써달라고 써져있어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비단 모즐리뿐 아니라 1차세계대전에서는 많은 과학자들이 전쟁에서 전사했다.
모즐리(사진중앙)의 대학 시절 사진, 위 사진 9명중 모즐리를 포함해 4명이 전사했다.
모즐리의 죽음에 그의 스승이었던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크게 상심했고 젊은 과학자들이 전장에서 죽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전장으루 투입되는 대신 전시군사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구를 해야한다고 주장하였고 이는 오늘날 존재하는
이공계 대체복부제도, 즉 전문연구요원 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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